승부차기 12번째 키커까지 가는 걸 처음 봤습니다. 두 팀 모두 이기고 싶었던 거 같네요. 이 정도까지 갔을 때 승패는 더 이기고 싶어 하는 팀에게 돌아가는 게 순리입니다.
올림픽 진출권이 달린 23세 이하 아시안컵 한국 대 인도네시아의 8강전 이야기입니다. 두 팀은 전후반, 연장전까지 2대 2로 비겼습니다. 승부차기에서 11번째 키커까지 승부를 내지 못했고, 12번째 키커에서 승패가 갈렸습니다.
대한민국, 인도네시아에 패해 올림픽 진출 실패
대한민국이 패했습니다. 10회 연속 올림픽 축구에 진출하는 데 실패했습니다. 인도네시아 23세 이하 팀에게 2실점을 했고, 경기 내용은 그보다 더 처참했습니다.
오만쇼크 몰도바사태 등 한국 축구에 오명으로 남은 참패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경기는 월드컵이나 올림픽 진출권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경기 내용에서는 지지 않았다는 위안거리라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인도네시아에게 참패 당한 것은 두 마리 토끼를 다 놓친 셈입니다. 올림픽 진출권을 놓친 게 참 뼈아픕니다. 그에 더해 경기 내용까지 졌다는 점에서 대표팀을 운영하는 모든 구성원들이 비판을 면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약팀에게 지면서 탈락이라니...
이번 경기에서 슛팅 숫자는 21대 8이었습니다. 인도네시아가 21. 한국이 8. 우리나라 첫 슈팅이 나왔습니다. 유효슈팅도 아니고.... 첫 슈팅이 전반전 추가시간에 처음 나왔으니, 그 시점엔 이미 2 실점을 한 상태였으니, 얼마나 참담한 경기였는지 느껴지실 겁니다. 전반전에 한국이 넣은 골은 사실 유효 슈팅도 아닌 헤딩이 상대편 자책골이 된 것이었어요.
전반전 분석한 내용을 보면, 점유율은 52대 48입니다. 인도네시아가 52. 큰 한숨이 나옵니다.
황선홍 감독의 전술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국팀의 수비는 3백이었습니다. 처음부터 중앙 수비를 두텁게 한거죠. 인도네시아가 8강 진출팀이고 용병 같은 귀화 선수가 있다고는 하지만, 한국이 인도네시아에게 이렇게 수비 축구를 하는 게 이해가 안 됩니다. 시작부터 우리가 인도네시아에 겁을 먹었거나, 황선홍이 신태용에게 졸았다고 밖에 볼 수 없는 상황입니다.
후반에 이영준을 투입했죠. 경기가 기울어진 뒤에 들어오니 급한 마음, 생각대로 풀리지 않는 경기에 퇴장 플레이가 나왔을 겁니다. 이영준의 퇴장을 개인의 문제로 보지 말자는 거예요. 상황이 그런 나쁜 상황을 만든거죠. 전형적인 약팀, 지는 팀의 경기 운영이 되었습니다.
선발로 강성진을 나왔죠. 강성진은 소속팀에서 스트라이커 자리보다 오른쪽 윙에서 왼발로 공격하는 스타일입니다. 그런 선수를 센터에서 공격을 맡길 경우 강성진이 수비수를 중원으로 끌고 내려오고 그 공간을 다른 선수들이 침투하는 공격 방식이 보였어야 합니다. 그런 2대 1 패스는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강성진을 두고 크로스 공격을 하니, 전술과 선수 배치가 잘못됐다고 평가받아야 하는 거예요.
인도네시아는 공격적이었습니다. 뻥 축구로 한방을 노리지도 않았습니다. 차근차근 빌드업을 하면서 공격을 전개했죠. 중원에서 볼 경합에서 이겨내면서 한국에게 위협적인 장면을 몇 차례 만들어냈습니다. 한국은 유효슈팅조차 못 만드는 상황에서 인도네시아는 자신들의 축구를 하고 있던 겁니다.
사실, 이번 대회 내내 황선홍 축구는 이상했습니다. 중국에게 경기 내용에서 밀렸고, UAE전에는 이상한 크로그 남발을 볼 수 있었죠. 일본전에서도 주도권은 일본에게 있었습니다. 예선에서 무실점 전승을 했지만 경기 내용에서 만족스러운 적은 없었습니다. 경기 내용에서 졌음에도 승리했기 때문에 잘 넘어갔는데, 결국 인도네시아 전에서 패하면서 그간의 경기력에 대한 문제까지 지적받을 것으로 보입니다.
남은 것은 비판 밖에 없습니다.
선수 시절에도 그렇게 비판을 받았는데, 감독이 되어서도 이러네요. (선수 시절 실력이 매우 좋았다는 건 부인할 수 없지만요)
EPL을 매주 보며 수준이 높아진 팬들에게 황선홍 감독의 축구는 90년대 한국 축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개인 실력이 좋아져서 몇 번 이겼을 뿐이지, 전술적으로 박수가 나오는 플레이는 거의 없었습니다. 국대 임시감독을 하면서도 그랬고, 이번 대회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반대로 인도네시아의 신태용 감독은 얇은 선수층의 인도네시아 선수들을 데리고 최근 현대 축구의 트렌드를 구현해냈습니다. 선수들의 약속된 움직임이 경기 내내 보였습니다. 2대 1 패스가 한국보다 많았던 거 같아요. 선수들의 라인 조절도 더 깔끔했고, 수비 시 둘러싸는 것도 많이 훈련된 모습이었습니다.
황선홍 감독은 아시안 게임에서 우승하고도 올림픽 진출에 실패하면서 비판받게 됐습니다. 감독 사퇴 내지 경질 수순을 밟지 않을까 추측합니다. 국대 감독 후보로 이름을 올렸지만 물건너 갔을 테고. 국대 감독은 물론이고 감독 커리어 자체가 끝났다고 봐야 할 거 같습니다.
축구협회도 다시 욕받이를 해야할 겁니다. XX 같은 조직이라는 비판을 방어할 핑곗거리가 이제는 없습니다. 축구협회가 수익을 올리는 올림픽 스폰서 계약 같은 것들도 물 건너갔습니다. 클린스만에게 수십억 날리고, 새로운 스폰서 계약은 어려워졌으니... 이참에 협회 윗선에 대한 구좆조정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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